나의 일상생활/나의 이야기

회룡포와 화회마을을

상영신 2009. 7. 22. 21:06

순길이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가은 석탄 박물관인데 잠시후 점촌에 도착예정 이란다.

서울에서  학교친구로는 처음으로 방분한 터라 허겁지겁 시청 주차장으로 향한다

여행 복장을 한 친구와 반갑게 재회를 한다

작년 가을 설악산에서 만났으니 거의 1년 만이다

휴가의 첫 경유지로 이곳에 들렸단다

친구에게 구경시켜줄 마땅한 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문경새재와 가은 석탄박물관을 이미 관광을 한 터라 용궁 회룡포로 향한다

 

<회룡포 - 한국관광공사의 자료>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고 거기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이 이 곳 회룡포이다. 유유히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기이한 풍경이 이곳 회룡포마을의 내성천에서 볼 수 있다. 이 기이한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인접한 향석리의 장안사로 올라가 굽어보아야 한다. 절이 있는 산이 비룡산인데, 그 산 능선에 1998년 회룡대라는 정자를 건립하였으며 여기서 정면을 보면, 물도리 모양으로 굽어진 내성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면 우선 강으로 둘러싸인 땅의 모양이 항아리 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맑은 강물과 넓은 백사장이 보인다. 백사장 가에는 나무가 둥근 곡선을 따라 심어져 있고, 논밭이 반듯반듯 정리되어 있다. 그 중앙에 회룡포마을이 있고 오른편 곳곳에는 숲이 울창하다. 이 비룡산에는 장안사와 원산성 등의 유적지가 있는데 정상 바로 밑의 장안사는 통일신라때 의상대사의 제 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고찰이라고 한다. 최근에 중수를 한 관계로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찾는 이가 드물어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회룡포마을에는 7, 8년 전만 해도 20여 남짓 가구가 살았으나,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지금은 9가구 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은 논밭까지 합쳐 5만평 정도이다. 한바 퀴 도는데 1시간도 채 안 걸린다. 이곳은 1997년부터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기반 시설을 조성하였으며, 2004년부터 생태체험 관광지로 조성하게 된다. 회룡포 주변 둑 길에는 소나무를 심었고, 주변에는 잔디를 심은 공원과 산책로가 들어섰고 봉수대를 97년 11월 복원완료하였다. 앞으로 철쭉군락지 조성과 숙박시설을 늘리면 관광지로서 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2002년 KBS 인기드라마였던 "가을동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장안사>

천상의 정기 서린 곳에 비룡(飛龍)이 꿈틀거리는 장안사
천년 신라에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정상 가까이에 장안사가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이곳 용궁면 용궁리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이다. 1300여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고찰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의 장안사(長安寺)는 허물어질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로 전국을 행각하던 중 이곳 장안사의 빼어난 산세를 보고 들어오셨다. 혼자 괭이로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들보를 옮기며 새롭게 가람을 중수하셨다. 기와를 머리에 이고 흙을 지고 나르는 스님의 모습에 마을주민들도 감복해서 스님을 도와 불사를 거들었다. 모두의 간절한 원력으로 마침내 장안사가 옛 모습을 보이고 다시 신도들이 찾아들자 두타(頭咤) 스님은 말없이 절을 떠나셨다. 오실 때의 모습 그대로 걸망 하나만 매고 조용히 떠난 스님은 출가 때 세운 서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태백산 어디선가 공부만 하고 계신다고 전한다.

장안사와 더불어 장안사 뒷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회룡포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유명한 자랑거리다. 장안사 뒷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장안사에서 세운 회룡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은 눈을 의심할 만큼 신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팔각정 안에는 고려시대의 문관이며 재상이었던 이규보가 장안사에 머물면서 장안사에 대해 쓴 시가 걸려있다. 이규보는 이곳 장안사에 오래 머물면서 글을 지었으며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 또한 이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이 장안사 도량에서 원(願)을 성취하고 밖으로 역량을 발휘했다고 한다.

장안사 입구 안내문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있다. “사바세계의 크고 작은 번뇌를 잠시 벗어두고 조용히 천년의 소리와 가신 선인들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여 보소서.” 장안사는 그러기에 더욱 좋은 절이고 다시 찾고 싶은 가람이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하회 마을을 관광하고 용궁의 유명한 순대전문집 박달식당에서 순대국밥으로 손님 접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