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일반산행

모악산 산행

상영신 2012. 6. 24. 23:51

일시 : 2012.6.24(일)  6:00-18:00

장소 : 모악산과 금산사

누구랑 : 함박꽃 산악회원과 함께

산행코스 : 모악 관광단지(기념비)→ 선녀폭포→ 대원사→ 대피소(샘터)→ 무제봉→ 모악산(정상) → 775고지→ 전망암→ 장군재→ 모악정→ 금산사 계곡 → 금산사→ 공원관리사무소

 

함박꽃 산악회 6월 정기 산행에 동참한다

문경시청을 출발하여 상주 청원간 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3시간 30분만에 모악 관광단지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오가는 시간에 비해 산행시간이 적고 탁 트인 김제 평야를 볼 수 없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모악 관광단지 출발(9:35)

 

 모악산 기념비(9;38)

 

 천일암과 대원사 갈림길(9:54)-우리는 오른쪽 대원사 길로

 

 대원사의 돌탑과 대웅전 (10:4 )

 

 수왕사 갈림길 (10:35)- 산행시작 1시간

 

 수왕사의 진묵사조사전 (10:44)-수왕사(물왕이절, 무량이절)는 절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안부 갈림길(10:52)-판매하는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무제봉에서 본 구이시설단지와 구이저수지(11:3)

 

 무제봉에서 바라본 모악산 정상(11:4)

 

 무제봉에서 손선생님(11:5)

 

 무제봉에서 인증샷(11:5)

 

 모악산 정상 직전의 갈림길(11:24)

 

 모악산 정상에서(11:31)-통신 시설 기지이지만 등산객들에 개방됨

 

 모악산 정상에 마련된 망원경(11:31)-안개 때문에 김제평야와 만경평야 볼 수 없어 아쉽다

 

 정상 부근의 잘 정비된 등산로(11:44)

 

 통신 시설 남쪽 문쪽 이정표(11:46)

 

 남쪽에서 본 정상의 통신 시설(11:46)

 

 점심(12:00 ~ 12:30)- 맥주를 스푼으로 

 

 장근재 갈림길(12:53)- 능선을 따라 배재로 하산할 수 있으나 우리는 여기서 계곡으로 하산

 

 케이블 카 탑 직전의 갈림길(13:7)

 

 통신 시설에 물자 공급을 위한 케이블 카(13:12)-계곡을 따라 포장된 도로를 따라 주차장까지 하산한다

 

 수해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는 모약정(13:20)

 

 심원암 삼거리(13:32)

 

 연리지 가는 길(13:36)-140m 가면 연리지가 있다

 

 멀리 조망되는 모악산(13:38)

 

 부도군 모습(13:39)

 

 

혜덕왕사진응탑비(13:40)-보물 제24호(

고려 예종 6년(1111년)에 세움)

 

 정겨운 금산사 담벼락(13:45)

 

  보재루(13:50)

 

 범종각(13:50)

 

 대적광전, 방등계단, 미륵전 모습(13:56)

 

 금산사의 보리수(13:56)

 

 미륵전(국보 제62호) 모습(13:57)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방등계단, 오층석탑(보물 제25호-뒤쪽),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앞쪽)(13:57)

 

뒷 틀의 나한전 (14:00)

 

방동계단과  부도(보물 제 26호)(14:6)-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미륵전의 북쪽 높은 대지에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고이 계단의 중앙에 보물 제26호인 부도가 1기 있어 그 형태에 따라 석종형(石鐘形) 부도라고 부른다.
방등계단의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적멸보궁(14:7)

 

금산사 입구의 금강문(14:14)

 

일주문을 지나서(14:20)

주차장에 도착하여(14:30)

간단히 뒷풀이한 후 집으로 향한다(14:50) 

<금산사 소개>

조선 성종 23년(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이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것임을 알수 있게 한다.
흔히 통일신라 시기 진표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왜냐하면 "삼국유사"를 비롯한 기록에 의하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의 순제법사에게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표율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되었음을 알게 한다.
남아있는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후 금산사의 모습이 크게 부각된 것은 통일신라 시기 경덕왕때 진표율사에 의한 중창 때문이다.
금산사에서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던 진표율사는 27세 때에 변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철저한 수행에 전념하였다. 17년 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 된다.
이후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금산사의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이 때가 경덕왕 21년인 762년부터 혜공왕 2년인 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금산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금산사사적"의 내용을 근거로 불 때 599년 백제 법왕의 자복사찰로 창건되었으며,

 이 후 진표율사에 의한 6년여의 중창으로 사찰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 메김 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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