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생활/나의 이야기

서울 동기생들 고향 나들이

상영신 2016. 6. 10. 11:46

일시 : 2016. 6. 9(단오)

장소 : 석탄박물관, 가은촬영장, 고모산성

누구랑 : 김경범, 김광덕, 김기월, 김정태, 김정화,  남성식, 신옥순, 안수복, 이용수 부부, 채한기,

            최석봉, 최연자외 2명,


단오를 맞아 서울 초등학교 동기생 모임에서 고향나들이를 오는데 고향 친구들과 점심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석탄박물관 주차장에 가니 이미 연락이 닿은 친구들이(용원, 황범, 일영, 진성, 은수, 나)모여 40여분을 기다린후 구경 마치고 나온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가끔씩 만난 친구도 있고 10여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다

서을 동기생들은 모임에서 일년에 한번씩 봄나들이를 한다고 한다.

민지 송어장에서 점심을 먹고 고모산성을 안내하기 위해 진남교반을 찾는다.

복원된 성을 불러보고 토끼비리로 안내를 하니 아침에 철로자전거를 타느라고 힘들었다는 친구들은 산성에 남아 기다린다.

더운 날씨 탓에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면서 전망대에 도착하여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멋진 진남교반의 풍광을 즐긴다.

성황당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8월동창회에서 만나기로 하고 작별을 한다.

 











<고모산성>

우뚝 선 산허리와 지세를 활용한 천연요새, 먼 옛날 삼국시대 병사들의 자취가 그대로 머물러 있는 군사 요충지,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의 소망이 담긴 영남대로 옛길. 그리고 이들을 모두 품은 이곳은 오랜 세월을 스치며 숱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고모산성이다.

문경 마성면 신현리에 위치한 고모산성(故母山城)은 해발 231m 고모산(姑母山)에 쌓은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둘레는 1,270m 규모로 장방형을 이루는데, 근래에 들어 복원한 느낌이 강하지만 소백산맥 이남의 전진기지로서의 거점성으로 활약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삼국시대 초기인 2세기경 신라에서 계립령로(鷄立嶺路:문경충북 미륵사지)를 개설하던 시기에 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으며, 할미성이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때에는 산성의 규모에 놀란 왜군이 성이 텅 빈 줄도 모르고 진군을 주저했다는 일화가 있으며, 6.25 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고모산성은 주변 산세를 이용해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동서남북으로 성문을 만들고 두 곳에 곡성(曲城), 가장 낮은 서쪽 계곡 중앙에는 2개의 배수구를 만들었다. 성의 높이가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로 차이가 있고, 폭은 2~3m로 쌓았다. 동쪽에는 암문 1개가 남아있다.

고모산성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눈에 보이고, 남쪽으로는 불정지역 외의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한말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의병항쟁 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1km 내려가면 옛길의 1번지답게 2007년 명승 제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 옛길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 교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모산성이 위치한 곳은 지형상의 특성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서, 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마고산성, 고부산성, 희양산성 등 많은 산성이 분포해 있고,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토끼비리>

성곽 위로 난 외길을 따라 걸으면 2007년 명승 제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에 다다른다.

토끼비리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난 잔도(棧道), 잔도란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을 말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영남대로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벼랑에 난 길이라 위험하므로 현재는 데크로 길을 만들어놓았다. 이 때문에 간혹 어디가 토끼비리인지 찾지 못하는 관광객들도 있는데, 데크 아래와 경사면을 자세히 보면발밑의 이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안내판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옛 사람들은 이 위험한 길을 지나다녔던 것이다.


- 관갑의 사다리길 -

요새는 함곡관처럼 웅장하고

험한 길 촉도 같이 기이하네

넘어지는 것은 빨리가기 때문이요

기어가니 늦다고 꾸짖지는 말게나


이 시는 면곡 어변갑(1380(고려 우왕 6)~1434(조선 세종 16)) 선생이 이 길을 지나며 쓴 시로, 토끼비리를 지나가는 것이 매우 험난하고 힘들었음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권근(1352~1409), 서거정(1420~1488) 등 수많은 과객들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토끼비리의 벼랑길 약 500m는 벼랑의 석회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절단하여 암석안부(巖石鞍部)를 파낸 곳으로, 오랜 세월동안 이 길을 밟으며 지나간 선인들의 발자취가 빤질빤질한 바위로 남아있어 세월의 흔적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다.

토끼비리는 매우 위험하고 험한 길이지만 그 이면에는 두려움을 씻어주듯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영강의 물줄기와 다리, 맞은 편 경관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망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 일대이다.

토끼비리는 한국의 옛길 가운데 그 역사성과 지형적 특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존된 한국의 대표적인 옛길이라 자부한다.

(참조-문경시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