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생활/나의 이야기

통일 안보 현장 답사

상영신 2016. 10. 10. 10:26

일시 : 2016.10.8

장소 : 다부동 전적 기념관, 포항학도의용군 전승 기념관, 오어사

누구랑 : 문경ROTC동문회 회원과 가족 23명


10월 월례회는 대한민국을 구한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다부동 전투 지역과 육군 3사단 소속 학도의용군 71명이 포항여중에서 단독으로 전투에 참여하여 김춘식 외 47명이 산화한 곳으로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한 포항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을 다녀온다.


<다부동 왜관전투 개요>

다부동 전투는 1059년 7월 29일 미 제8군 사령관 워커(Walton H.Walker)중장이 "한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기면 수많은 전우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라고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를 명령함으로써, 한국군 제1사단이 1950년 8월1일 낙동강을 도하한지 3일이 지난 4일 낙정리(다부동 북방 43Km)에서 시작되었으며 같은해 9월 16일 개시된 반격작전의 일환으로 다부동 북서쪽 11km지점의 천생산을 탈환한 후 잔적을 소탕한 9월 24일에 끝났다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김일성은 7월 21일 수안보 전선 사령부까지 내려와서 8.15광복절 기념행사를 대구에서 거행하겠다는 망상하에 대구 공략을 위해 북한군 5개 사잔(3사단-성주, 10사단-고령, 13사단-상주, 15사단- 선산, 1사단-효령)을 투입하여 총공세를 펼쳤으며, 이에 아군은 왜관 303고지(작오산)-328고지(석적포남)-518고자(숲데미산)-유학산9839고지)-다부동-중구동에 이르는 Y방어선을 구축하고 적과 공방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때, 8월 16일 UN군은 B-29폭격기 98대가 약목 및 구미 3공단지역일대에 용단폭격을 감행하였고 북한군 13사단 기갑부낻 T-34전차와 미 제25사단 27연대 M-26전차와의 최초 전차전이 이곳에서 있었다.

55일 동안의 이곳 전투에서 아군은 1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적군은 1만7천6백여염의사상자가 발생되었다.


▼ 다부동 전투

다부동 전투(1950.8.1~9.24)는 국가 존망의 위글 극복하기위해  구축한 최후의 저지선(마산-왠관-낙동리-영덕:240km)으로 대구로 진출하려는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으로 마련한 구국의 격전지이다.


다부동 지구 전적비 기념관






기념관 내부 전시물 

호국용사 충혼비




야외 전시물

구국관


<전투경과>

1. 대한민국을 구한 다부동 55일

   - 1950.8.1~9.24(55일간)

   - 낙동강 방어선(240km)에서 가장 전략적 요충지

   -  전국토의 10%만 남은 상황

2. 삶과 죽음의 경계, 왜관 철교

  - 1950. 8.3 20:30

  - 왜관 철교 폭파를 통한 적 전차 도하저지, 공격지연에 성공

  - 피난민 희생과 함께 폭파

3. 혈맹국의 희생, 자고산 전투

  - 1950.8.15~17

  - 작오산 (303고지)방어 미5기병연대 H중대(45명) 집단 학살

  - 적 다발통으로 학생(5명 생존)

  - 전폭기 공격, 고지 탈환  : 8.17

4. 가장 치열했던 328고지 전투

  - 1950. 8.13~23

  - 당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피 아간 주인이 15회 바뀜

  - 양보할 수 없는 핵샘 거점 

  - 8.23 15연대 최종 탈환

5. 존무후무한 융단폭격

  - 1950. 8.16~12.24

  - 8.29 폭격기 98대(960톤)

  - 낙동간 대안(약목)일대

  - 적 전생 승리 확신 의지 상실

6. 시산혈하의 유학산 전투

  -  1950. 8.13~23

  - 수세로 몰렸던 아군이 전쟁의주도권을 잡은 전투

  -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류

7. 최조의 전차전 , 볼링엘리 전투

  - 1950. 8.18~23

  _ 천평계곡(진목정)에서 벌어진 최초의 전차전, 한미 연합작전

  - 전차폭음이 볼링공으로 핀을 넘어 뜨릴 때 모양과 유사

8. 보이지 않는 숭고한 희생

  - 다부동 전투간조국을 위해 희생한 경찰과 학도병

  - 보이지 않는 숨은 희생의 상징

  

▼ 학도의용군 전승 기념관

지금은 사라진 옛 포항역 앞에 탑산이 있다. 높이가 100m도 안 되는 나지막한 산이다. 그 산자락에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자리한다.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 의용군을 기리는 곳이다. 1950년 8월11일, 옛 포항여자중학교(현 포항여고)에서 단독 경계 중이었던 학도병 71명은 그날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8시간30분 동안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고 그 전투에서 47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0년에 개봉했던 영화 ‘포화 속으로’가 그들의 이야기다.

6·25전쟁 당시 국내학생 5만여명과 재일 유학생 641명이 전투에 참가했고, 약 20여만명이 후방 선무 및 공작, 위문활동, 잔당 소탕작전 등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그들 중 7천여명이 산화했고, 전국에서 제일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가 포항이었다. 전적비 옆에 당시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군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돌비에 새겨져 있다. 그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했고, 편지는 그의 옷 속 수첩에서 발견되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던 편지는 전해지지 못했다. 




포항지구 전적비


전몰학도충혼탑

▼ 오어사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하여 항사사(恒沙寺)라 하였다.

그 뒤 신라 고승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이 함께 이곳의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방변(放便)하였더니 고기 두마리가 나와서 한마리는 물을 거슬러올라가고 한마리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올라가는 고기를 보고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하였다는 설화에 의하여 오어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원효대사 삿갓

오어사 동종 - 고려시대의 범종, 1998년 6월 2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80호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