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나들이/일본

후쿠오카 가족 나들이1

상영신 2020. 2. 18. 15:02

일시 : 2020. 2. 14. ~ 2. 16

장소 : 후쿠오카, 다자이후, 유후인,  뱃부

누구랑 : 나. 이여사, 딸, 손자(4명)

 

출발 이틀 전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폐렴)로 인하여 일본도 여행 자제 권고 지역으로 분류되어 출발을 고민하다가 우려곡절 끝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다.

이번 여행은 당초에 이여사와 자유여행으로 계획되어 첫 해외 자유여행인지라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으나 딸이 합류하여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여행을 다녀온다.

 

◆  1일차 : 인천공항 - 후쿠오카공항 - 다자이후 - 유후인

8시 출발이기에 하루 전 날 호텔 휴 인천에어포트(무료 5일 주차)에서 숙박하고 공항순환셔틀버스(무료)를 이용하여 제2터미널로 이동한다. 도시락 와이파이(1층 6번출구)를 찾은 후 모바일 체크인을 했기에 자동 수화물 위탁으로 짐을 붙이고 정시에 출국한다.

공항은 예상했던 대로 한산하기 만 하다.

출발 전 확인한 일기예보는 3일 내내 비가 온다고 우려했는데 도착하니 날씨가 너무 좋다.

후쿠오카 공항에서도 직원들이 마스크만 착용했을 뿐 별 다른 조치 없이 입국한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토요터랜트카국제선점에서 차량(소형차 비츠, ETC, KEP포함)을 인수하여 다자이후로 향한다.

핸들이 우측에 있어 운전에는 다소불편하였으나 소형차이기에 불편함은 없다. 단지 매립형 네비게이션의 화면이 선명치 못하여 딸이 옆에서 구글네비게이션으로 중계를 해준 덕분에 무사히 운전할 수 있었다.

 

▶ 다자이후텐만구

다자이후텐만구 근처 삼조주자장(2시간50분-700엔)에 주차시키고 자다이후역 근처 日和(일본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10여명 점심을 먹고 있다. 모임이 있는 모양이다.

日和おまかせ膳, 萩弁当, 正食

점심을 먹고 다자이후텐만구를 구경한다.

다자이후 역
도리이가 있는 다자이후텐만구 들어가는 길 입구
나무젖가락을 연상케하는 스타벅스 다자이후오모테산도점
많지 않은 관광객들
전설의 소 동상
아치형 다리인 다이코바시(太鼓橋)
今王社  신사
다자이후 천만궁 심자지(心字池)

다자이후덴만구-학문의 신 스가와라노미치자네(菅原の道真)를 모시고 있는 다자이후 텐만구는 자녀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부모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넓은 경내에는 매화나무, 녹나무, 창포 등 아름다운 꽃이 계절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않고 봐야 할 것은 스가와라의 유체를 싣고 장지로 향하던 우마차가 갑자기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는 소의 동상과 연못에 아름다운 반영을 보여 주는 아치형 다리인 다이코바시(太鼓橋) 등이다.(참조-다음백과)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 天満宮)
본전 앞 우측에 있는 비매(飛梅 도비우메 : 아래 와카에 등장하는 매화가 교토에서 하룻밤 사이에 미치자네가 살던 다자이후의 집 뜰까지 날아왔다는 「도비우메(飛梅)」)

<미치자네가 교토를 떠나 다자이후로 향하면서 읊었다는 와카(和歌)>

東風吹かば 匂ひをこせよ 梅の花  - 동풍이 불거든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꽃이여. 
主なしとて 春な忘れそ - 주인이 없다 해도 봄을 잊지 말지니

분재 전시회

텐만구에는 시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많은 참배객이 모인다. 신궁 주변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메모장들이 주렁주렁하다.

신사를 방문하는 학생들
다자이후 천만궁 창포전(菖蒲池)
창포전(菖蒲池)과&nbsp;보물전(宝物殿)을 배경으로
신사의 봄을 알리는 홍매

나오는 길에 스타벅스 커피와 우메가에 모치를 맛본다. 이곳 명물로 ‘우메가에 모치’라는 떡이 있는데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다이자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유후인으로 이동한다. 일본에도 80km제한 속도에서 100km 넘게 달리는 차량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띤다.  1시간 40여분 소요되어 유후인역에 도착한다. 

다자이후텐만구 동영상

< 비매 (飛梅 도비우메의 안내문 이야기  >

안내문에는 "천신(天神)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真)가 교토의 집 정원 앞에 있는 매화와 작별하면서 와카(花歌)를 읊었다. 그런데 주인을 못 잊어하던 매화가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고 적혀 있다.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학문의 신’이 된 실존인물이다. 그는 845년에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이라 불렸다. 할아버지 기요토모는 뛰어난 유학자였고, 아버지 고레요시도 대학 문장과(文章科)의 수장인 고위 관료였다. 일설에 의하면 스가와라 가문은 백제에서 건너간 왕인 박사의 후손이라고 하고, 혹은 왕인의 문인이라고 한다.

스가와라는 열한 살 무렵 집 뜰에 핀 매화를 보고 한시를 지을 정도로 총명했다.

달이 하얗게 비추니 마치 눈 내린 듯하고(月燿如晴雪)

매화꽃은 빛나는 별 같구나. (梅花似照星)

금빛 거울(달)이 하늘에서 비추고 (可憐金鏡轉)

정원에 핀 옥구슬(매화)이 온 뜰을 향기로 채우는구나. (庭上玉房馨)

스가와라는 18세 때 과거에 합격한 후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했다. 891년에 다이고 천황은 그를 우대신(우의정)으로 임명했다. 스가와라의 딸이 천황의 황후가 되고 스가와라가 세력을 확대하자, 귀족출신 세도가인 좌대신 후지와라 토키히라(藤原時平)는 음모를 꾸며 901년에 스가와라를 규슈 다자이후 권수(権帥)로 좌천시켰다. 이를 ‘쇼타이의 변’이라 한다.

사실상 유배살이 한 스가와라는 술로 실의의 세월을 보냈다. 끼니마저 거르자 한 노파가 ‘매화가지에 꽂은 찹쌀떡(우메가에모찌 梅ケ枝餠)’을 건넸다.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이 떡을 맛있게 먹으면서 노파에게 시 한 수씩을 건넸다.

스가와라는 다자이후로 좌천된 지 2년 만인 903년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의 관 위에는 매화 한가지와 찹쌀떡만이 얹어졌다. 유해를 소달구지에 싣고 장지로 향하던 중 황소가 갑자기 멈췄다. 이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스가와라의 시신은 이곳에 묻혔다.

천만궁 입구에는 청동 황소가 있는데 황소 얼굴과 코는 유난히 반질반질하다. 이 부분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텐만궁은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연간 800만명의 참배객이 모인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우메가에모찌’를 먹는다.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져서 공부가 잘 된단다.

(참조 : 남도일보에 실린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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