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8. 8.5
장소 : 각화산(1,177m)
누구랑 : 신상영, 홍종길
산행코스 : 각화사-각화산- 태백산사고지-왕두산-금봉암(동암)-각화사(5시간)
<각화산>
각화산(해발 1,177m)은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에 걸쳐 왕두산(1,044.3m)과 나란히 솟아있다. 각화산은 고산준령에 막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조선 5대사고 가운데 하나인 태백산사고지(사적348호)가 설치되어있었다. 각화산이란 지명은, 본래 춘양면 서동리의 람화사(覽華寺)를 서기 676년(신라 30대 문무왕 16년)경에 원효대사가 이곳으로 이전하고 람화사를 생각한다하여 생각 "각"자로 바꿔 부른데서 기인한다. 각화산에는 창건 당시 800여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 사찰로 손꼽혔던 각화사가 위치해 있으며, 봉화군 춘양면은 우리나라의 수목 중 가장 쓰임새가 많은 재목 춘양목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가은초31 산우회 정기산행일이 다음 주에 봉정암으로 변경되어 번개산행을 한다.
무더위 탓에 2명이서 7시10분 점촌을 출발한다.
88번도로 석현리에서 우회전하여 각화사로 8:26
8시 30분에 각화사에 도착하니 대웅전 뒤 축대 작업으로 인한 포크레인 소음으로 분위기 꽝이다. 경내를 둘러 보고 산행을 시작한다. 대분분 왕두산으로 올라 각화산으로 내려오지만 우리는 반대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오히려 각화산까지만 오르면 계속 내림막길을 하산하여 다행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무척 더우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간간이 산들바람이 불어주어 점심먹을 때에는 오히려 서늘하다는 느낌마져 들게 한다. 산행을 마치고 오전 약수터에 들려 귀가를 한다.
일주문이 아닌 월령류에 걸린 태백산각화사 현판 8:45
대웅전과 선방 8:50
현판이 걸려 있는 월령류 8:51
월령루에 걸린 현판 8:52
각화사 좌측 다리 8:54
이곳 다리를 지나 우측이 등산로 초입이다. 대웅전을 정면으로로 보았을때 좌측 능선을 타고 산행을 시작한다.
지능선 안부로 오르는 등로의 소나무들 9:02
지능선 안부에 도착 물 한모금 먹고 9:13
석화산을 오르는 등로상의 금강송 군락지를 지나 9:31
정상 부근 안부에 도착 왼쪽으로 진행하면 각화산 정상 10:20
헬기장의 각화산 정상 10:28
각화산 정상에서의 조망
각화산 정상에서는 우거진 굴참나무들로 인하여 주위가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다. 왔던 길을 뒤돌아 태백산사고지로 향한다.
유일하게 조망되는 석현리 방면 10:45
진행방향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사고지 가는길 10:53
사고지로 내려가는 등로를 막고 있는 쓰러진 굴참나무 10:54
지능선을 따라 10여분 내려가면 우측으로 사고지가 나타난다.
복원 중인 사고지터 11:04
태백산 사고 11:07
태백산 사고지 11;08
태백산 사고-조선왕조는 오대산·마니산·적상산·춘추관·태백산에 각각 사고(史庫)를 지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사고(史庫)의 구조는 실록각(實錄閣)과 선원각(璿源閣)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밖의 부속 건물로 구성된다. 사고의 개고(開庫)는 정기적인 포쇄(曝曬)와 봉안·개수 등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조정에서 사관(史官)을 파견하여 시행하도록 하여 지방 수령이 자의로 사고를 개폐할 수 없도록 하였다. 1606년부터 1892년까지의 태백산사고의 개고 횟수는 90회에 이른다.
대한제국 때에는 의정부에서 관원을 보내 해당 지역의 군수와 협동으로 개고하였는데, 태백산사고의 경우 1898년부터 1910년까지 7회에 걸쳐 사고를 점검하였다. 태백산사고에는 참봉과 십 수명의 수복이 교대로 근무하였다. 또 수호사찰인 각화사(覺華寺)에 승군 25명을 두었다. 사고에는 관료(官料)와 위전(位田)을 지급하도록 하였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봉화는 작은 고을로 사고를 수호하기에는 힘겨워 당시에는 안동에 속하였던 춘양면을 봉화에 붙여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요청한 일도 있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고 관리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과 관심은 왕조 말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왕조는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전주사고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소실되자 1603년(선조 36)부터 실록 복구사업을 시작하여 3년에 걸쳐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하여 태조부터 명종까지 역대왕의 실록 3질을 새로 인출하였다. 태백산사고는 1605년에 태백산 입봉 아래에 터를 잡고 공사가 시작되어 이듬해 건물을 준공하여 실록을 봉안하였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태백산사고본 실록은 이듬해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옮겨지고 1930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전되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에 소장되었다가 1985년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되었는데, 대체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1958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태백산사고본 실록을 축쇄하여 영인본으로 『조선왕조실록』48책을 간행하여 학계에 보급하였다. 그 후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실록을 국역하였고 서울시스템에서 국역본과 표점 교감본을 디지털화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다시 이들 작업을 통합하고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하여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그 내용을 볼 수 있게 하였다.(참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내려왔던 능선길을 다시 힘들게 올라 왕두산으로 진행한다. 능선을 위험한 구간은 없지만 가파른 구간은 가끔싹 나타난다. 주위에는 온통 굴참나무 원시림을 이루어 조망 없이 그늘 속에서 동쪽으로 산행을 계속한다.
울창한 굴참나무 숲을 지나 11;48
살짝 오름막으로 바뀌는 곳의 산소 12:08
이곳이 동암으로 하산하는 길 12:19
생명을 다한 거대한 금강송 12:19
왕두산 (1,044m)-춘양면 의장협의회에서 세워 놓은 표지석 12:23
왕두산의 조망 동영상
여기에서 진행방향(동뽁)으로 곧장가면 형제봉이고, 각화사는 10m 뒤돌아와서 좌측 지능선으로 내려선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는다. 바람이 제법 불어 완전 시원~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
다시 하산을 하면 헬기장과 만난다. 각화사가는 길은 헬기장 우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헬기장에서 어디로갈지 고민 직진 아니면 우측 13:28
각화사로의 하산길 13:36
하산길에서 우측으로 희미하게 난 길을 나무로 막아 놓았는데 아마도 금봉암(동암)가는 갈림길인 모양이다. 조금 내려가니 스님 두분께서 길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계신다. 동암에 계시는 스님으로 생각된다. 다시 길을 내려오니 이러한 스레트집도 좌측으로 보인다.(지도에는 작은 집으로 표시)
좌측으로 보이는 스레트 건물 13:56
조금을 내려가면 각화사 입구의 도로와 만나게 된다. 이곳이 왕두산으로 오르는 초입이다(산행기에는 주고 대웅전 뒤 싸리문으로 오른다고 했는데 요즘은 통제를 한다)
왕드산 등산로 초입 14:01
시간이 많이 남아 경내를 다시 둘러보며 사진 몇장을 남긴다.
각화사 경내
무명탑 14:06
차량을 타고 내려오는 도로의 좌측으로 귀부가 보인다
각화사 귀부 14:27
각화사 귀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9호. 장방형의 지대석(地臺石)과 귀부가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지대석의 전면 양 모서리는 모를 죽여 사선형을 이루고 있다.
귀부는 앞과 뒤에 각각 2발이 모두 표현되었는데, 모두 4개씩의 발가락이 묘사되었다. 전면의 발가락은 발톱이 앞을 향해 전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면, 후면의 발가락은 양옆으로 퍼져 앞발의 전진을 밀어주는 형상을 보이고 있어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귀부의 머리는 평면적으로 등에 비해 약간 높게 조성되었는데, 상면은 평판적이다. 꽉 다문 이빨, 동그란 눈, 갈귀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마멸이 심한 편이다.
등에는 6각형의 귀갑문(龜甲文)이 조각되었는데, 내면 중앙에는 王과 卍자가 양각되어 있다. 귀부의 등에는 장방형의 비좌(碑座)가 마련되어 있다.
본래는 고려 초기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지냈던 김심언(金審言)이 지은 통진대사비의 비좌로 쓰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새로 조성된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길이 2.2m, 너비 1.9m, 높이 92㎝의 규모인데,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참조-다음백과)
각화사 부도 14:29
각화사를 떠나 88번 도로를 타고 도래기재를 너머 우구치리(금정) 계곡들 둘러보고 되돌아 백두대간수목원을 지나 오전약수터를 찾는다.
약수터 윗쪽 공원의 분수 15:35
물야의 오전 약수탕 15:44
철분이 많아 녹슬은 철봉 맛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한 사발 먹고 봉화를 거쳐 점촌에 도착하니 17시를 조금 넘는다. 땀을 많이 흘렸다며 친구와 보양식오로 영양 보충을 하고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도 불구하고 각화산 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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