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8. 10. 3
장소 : 기계 안강지구 전투 전적비,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
누구랑 : 문경 ROTC 동문 가족들
문경 ROTC동문회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안보 견학을 다녀온다.
기계 안강지구 전투 전적비와 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견학하고 은해사, 옥산서원, 포항함 체험관을 둘러 본다. 남북 대화가 오가고 있지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 기계 안강지구전투
국군 수도사단이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14일까지 안강·포항·경주 일대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전투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전적비- 포항시 기계면 성계1리에 소재
▼ 장사 상륙 작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적을 기만하기 위해 학도병들로 구성하여 실시한 양동작전(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KFN스페셜] 비사(秘史), 1950년 9월 장사 상륙작전
▼ 포항함 체험관
2010년 3월26일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의 잠수정 공격으로 침몰한 첨안함과 동일 제원의 함정으로 퇴역한 초게함
▼ 은해사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니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1270호인 은해사 괘불 탱화를 비롯하여 김정희가 직접 쓴 편액 등 문화재가 다수 있다.
보물 제1270호 괘불 탱화
은해사 모습(동영상)
▼ 옥산서원과 독락당
사적 제154호.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했다. 1574년 사액 서원이 되었다.
세심대
독락당-회재 이언적의 생활 공간
독락당 모습(동영상)
계정과 자계천
<기계 안강 지구 전투 내용> 참조-다음백과
국군 제1군단은 1950년 8월 초 북한군의 주력이 안동∼의성∼영천 접근로에 투입될 것으로 판단하고 예하 제8사단을 의성 일대에, 수도사단을 길안 일대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수도사단이 8월 5일부터 단행된 적의 대규모 공격을 받고 방어선이 와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의성 일대로, 퇴로가 차단된 제18연대와 독립 기갑연대는 구수동을 경유해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위기를 느낀 육군본부는 포항지구전투사령부를 급편하여 의성에 집결한 수도사단을 안강으로 이동시키는 한편 제18연대와 독립기갑연대를 현동으로 진출시켜 기계 일대의 적을 남북 양쪽에서 포위하였다.
8월 13일 제1군단의 명령에 따라 수도사단은 제1연대를 안강지구로 이동시켰고, 제18연대와 독립 기갑연대는 구산동에서 동남진하였다. 퇴로차단의 위협을 느낀 적이 비학산 일대로 퇴각함으로써 수도사단은 18일 오후 기계를 탈환하였다.
비학산 일대에서 제766부대를 해체해 병력보충과 부대를 재편성한 적은 8월 26일 야간에 대규모 공격을 재개해 새벽 무렵에 기계를 재점령하였다. 수도사단이 기계 남쪽 고지에 제18, 제17, 제1연대순으로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는 가운데 9월 2일 적은 공격을 재개하였다. 전차를 선두로 기계∼안강 도로를 따라 주공을 투입한 적은 일부 병력으로 제18연대를 우회 공격함으로써 아군 방어선의 서측이 위태롭게 되었다.
수도사단장은 사단의 좌측 방어선이 돌파되자 안강 남쪽의 곤계봉∼호명리 일대로 철수를 명하였다. 그리고 무릉산∼곤계봉 간에 기갑연대와 제3연대를 추가로 투입해 방어력을 강화하였다. 반면 안강에 집결한 적은 전차를 선두로 경주를 향해 남진을 시작하였고, 무릉산∼곤계봉 일대에 병력을 집중해 공격하였다.
수도사단은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수 시간 만에 진지가 돌파되었으나, 즉시 기갑연대 제3대대와 제17연대로 역습을 전개해 진지를 회복하고 적의 돌파구 확대를 봉쇄하였다. 하지만 양측은 곤계봉 확보에 전체작전의 성패를 걸고 치열한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폭우로 인해 유엔 공군의 폭격이 중단된 틈을 타 공격을 재개해 곤계봉을 다시 장악하였고, 이어 옥녀봉과 운제산까지 진출하였다. 워커 중장의 운제산 탈환명령에 따라 제18연대는 운제산 서남쪽에서 적의 경주 진출을, 그리고 제26연대는 운제산 우측에서 적의 비행장 방면 진출을 차단하였다. 수도사단은 제17연대가 9월 12일 야간에 곤계봉 탈환에 성공함으로써 안강 남쪽의 주저항선을 회복하고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 전투로 북한군 제12사단은 낙동강 전선의 동부지역 돌파작전에 실패하였고, 국군 제1군단은 기계와 포항지역 북방으로 후퇴한 적을 추격해 다음 단계의 반격작전으로 이행하였다.
<장사사율작전> 참조-다음백과
장사 상륙 작전(長沙上陸作戰) 또는 장사동 상륙 작전(長沙洞上陸作戰)은 1950년 9월14일~15일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이다. 작전명 174고지라고도 한다.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06:00에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대한민국군의 학도병으로 구성된 772명이 문산호를 타고 장사에 상륙하여 국도 제 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고 철수한 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실시되어 양동작전으로서는 성공하였다. 원래는 8군에 떨어진 명령이었으나 인민군 복장을 입고 특수 작전을 해야 하는 사정상 북한 군과 외모가 비슷한 남한 출신 학생들인 학도병에게 작전명 174를 맡긴 것이다. 7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사망한 학도병을 제외하면 모두 행방불명 상태이다. 원래는 3일간 상륙한 뒤 귀환할 예정으로 총기등의 물자도 3일치만 지급되었다. 그러나 문산호가 좌초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총알과 식량이 부족해진 가운데에서도 7번 국도 차단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고립된 학도병들을 구출하러 배를 보냈지만, 죽기 전까지 싸웠던 북한군(북한군 2개 사단 정예부대)에 의해 대부분 전사하였다. 배가 상륙하면 배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학도병들이 상륙했던 문산호 (lst-120)는 1991년 3월 쯤에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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