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명산40 탐방(2013)

명산40 탐방 20 : 조계산(장군봉)

상영신 2013. 5. 12. 21:03

 

<명산40 탐방 20 : 조계산(장군봉>

 

일시 : 2013.5.11(토) 12:00~15:30

장소 : 조계산(884m)                                                  나의 도전 현황 20산 : 20,175m

누구랑 : 나홀로

 

산행경로 : 주차장 - 삼인당 - 대각암 - 행남절터 - 장군봉 - 

              비로암 - 대각암 - 선암사 - 주차장 (산행시간  3.5시간)

날씨: 화창한 봄 날씨, 바람 거의 없음

경비 : 이동거리(선암사, 천자암, 대가저수지) 415km  유류대 60,000원 고속도로비 14,100원

         주차비 및 입장료: 4,000원(선운사), 3,000원(송광사 입장료)  계 81,100원


이번 탐방은 거리가 먼 관계로 조계산(토요일), 내장산과 백암산(일요일)을 탐방하기로 하고 야영 준비를 하고 느즈막히 출발을 한다(8:40)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고령 JC까지, 고령IC에서 33번국도로 진주까지, 남해고속도를 경유 승주ic를 거쳐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33번 국도가 완공이 되지 않은 탓에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신록에 물들은 선암사가는 길12:12

선암사의 부도군 12:20 - 이들 부도는 선암사를 위해 헌신한 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탑

아치형 다리 사이로 승선교가 보인다 12:24

승선교(昇仙橋)- 보물 400호 12:27

삼인당(三印塘) 12:31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도선국사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삼인-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盤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

장군봉 2.7km 12:33

대각암 주차장에서 좌측으로 12:39

비로봉과 장군봉 갈림길 12:41-= 내려올때 여기에서 만난다

장군봉을 오르는 길은 경사가 그리 가파른 것도 아니고 험하지도 않아 초보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탐방로라 생각된다. 50여분을 오르면 절터를 지나게 된다  

행남절터 13:27

장군봉에서 인증샷 13:52

장군봉에서 작은 굴목재로 내려오려 하였으나 통제구간으로 되어 있어 올랐던 기로 5분쯤 내려와 전망이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비로암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비로암 하산로 14:30

조금을 더 내려오면 다시 양갈림길이다. 우측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등산로를 따라 내려 가면 비로암이다. 내려가는 길이 다소 가파르고 정비가 잘 되어 있지는 않다

비로암를 지나면서 14:42

비로암을 지나서 대각암까지는 등산로가 괜찮은 편이다

작은 굴목재와의 갈림길 15:02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15:02-12:41분에 통과했던 곳(1시간 20분 소요-점심시간 포함)

임제선풍의 대쪽같은 승풍을 고고하게 지켜온 청정도량이자 천년고찰 한국불교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는 한번을 다녀간 곳이기에 이번에는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탐방을 대신 한다

선암사는 해발 884m되는 조계산<曹溪山> 남쪽의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암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문헌기록이 없다. 다만 18∼19세기에 기록된 「선암사중수비」「선암사 6창건기」등에 의해 어렴풋이나마 선암사에 대한 초창연대를 추정할 뿐이다. 우선 위 두 기록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대(514∼540년)에 아도화상이 청량산 해천사를 창건하고 신라말 도선국사가 나중에 이름을 선암사로 고쳤다고 하며, 다른 하나의 기록은 도선국사가 나중에 이름을 선암사로 고쳤다고 하며, 다른 하나의 기록은 도선국사가 비보도량으로 호남의 삼암사를 창건하였는데 그 삼암사는 영암의 용암사, 광양의 운암사, 승평의 조계산 선암사라 하였다. 따라서 삼암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호남의 삼암사 중 하나이다. 어쨌든 선암사를 도선의 초창으로 본다면 이 시대에 속하는 현 대웅전 앞 3층석탑이 통일신라말 9세기 후반경이라고 할 때 국사의 생존연대와 일치하고 있어 주목된다. 고려시대에는 대각의천국사에 의해 대대적인 중건사업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의천은 헌종 1년(1095) 이곳 남쪽 지역을 돌아 보면서 선암사에 주석하였는데, 지금도 선암사에 전해지고 있는 용문탁의, 가사, 대각국사영정, 선암사중창도 등은 모두 의천과 관련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탄 후 인조 22년(1644) 탄원선사에 의한 대각암 중건을 시작으로 헌종 1년(1660)경잠·경준·문정 삼대사에 의해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160여 년이 지난 19세기 초기에 또 한 차례의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해붕·눌암·익종 삼대사에 의해 마무리 되었다. 선암사 경내에는 현재 30여 동의 건물과 석탑 2기, 홍교, 대각국사 영정, 석탑사리구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중수비, 전 도선국사 직인통, 향로, 대웅전 등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98년에는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이 국가문화재 인 사적 및 명승(제7호)으로 지정된 바 있다. (다음문화유산 참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뒤깐(화장실) 15;09

화장실의 내부 칸막이는 있으나 내부 문은 없다 15:09

대웅전 모습 15:15

일주문 15:16

뒷뜰에 있는 홍매화와 백매화는 몇년 전에 와서 구경을 한 탓에 오늘은 패스를 하고 쌍향수가 있는 천자암으로 향한다

37km를 운전하여 천자암 주차장에 도착한다 16;22

천년기념물 88호 쌍곱향나무 16:37

이 향나무를 흔들면 극락세계로 갈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접근 금지

천자암 16:39

다시 송광사로 향한다, 17:20분에 도착하여 경내로 들어간다

송광사는 삼보(부처님, 가르침, 승가) 사찰의 하나라고 한다. 통도사는 불보사찰(진신사리), 해인사는 법보사찰(대장경), 송광사는 승보사찰(16인의 국사)이라고 한다

송광사는 『승평속지<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에 혜린선사<惠璘禪師>가 창건하여 길상사<吉祥寺>라 하였는데 건물은 겨우 1백여 칸에 불과했으며 승려수는 30∼40명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혜린선사가 어떤 스님인지 그 행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확실한 송광사의 초창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에 보조국사의 정혜사<定慧社>가 있기 이전에 소규모로 사원이 경영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후에 길상사를 중창한 스님은 고려 인종(1123∼1146년)때 활약했던 석조대사<釋照大師>이다. 개창 이후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이기 때문에 집이 기울고 단청도 퇴락한 길상사를 석조대사는 대찰의 원을 세우고 사람을 소집하고 목재를 준비하였으나 이같은 대역사를 완공하지 못하고 입멸하였다. 이러한 폐허의 길상사가 새로운 규모의 대찰로 발전하게 된 것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그의 도반<徒伴>을 이끌고 이곳에 정혜사를 옮겨온 뒤부터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년)은 당시 속세의 명예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교계를 떠나 남쪽인 이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혁신의 바람인 정혜결사<淨慧結社>를 일으켰다. 특히 지눌은 희종(1205∼1211년)의 막강한 후원을 입고 있었는데,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희종은 그가 즉위하자마자 「길상사」란 이름을 「수선사<修禪寺>」로 고치도록 친히 글을 써서 제방<題榜>을 내렸다. 그러니까 정혜사<定慧社>에서 수선사<修禪寺>로 바뀐 것이다. 그 뒤 송광사는 고려말까지 약 200여 년에 걸쳐 16국사<國師>를 배출함으로써 우리나라 삼보사찰중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는 송광사는 조선조에 들어와 정유재란의 전란을 겪고 난 후 응선, 희장, 부휴 등에 의해 일부가 복건<復建> 되었으나 다시 헌종 8년(1842) 대화재로 거의 불탄 것을 기봉·용운 등 두 대사의 주관으로 14년에 걸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게 된 것이다. 현재 사내에는 50여 동<棟>의 건물 외에 국보 3점과 보물 13점, 지방문화재 10여 점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1980년대 초부터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현 대웅전은 亞자형 건물로서 국내 최대의 법당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998년에는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일원이 국가문화재인 사적 및 명승(제7호)으로 지정된 바 있다.(다음문화유산)

좌측길이 도보길 우측길은 차량 통행길 17;23

사찰내의 편백나무군 17:27

인내도 17:37

송광사 입구 17:37

입구 우측의 부도군 17:37

송광사 17:39

도랑 위에 매달린 연등17;40

대웅전 입구17:41

사월 초파일을 맞아 대웅전에 마련된 연등 17:44

대웅전 뒷편 17;45-일반인 출입 금지

대웅보전 17:46

대웅보전 현판 17:47

사찰의 유명세 만큼이나 많은 연등들 17:48


약사전 17:50

대웅보전 뒷 건물 17:56

송광사의 바사리구시 17:58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도 하나 느티나무로 만든 제사시 밥을 넣어두는 그릇으로 쌀 7가마 4,000명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송광사 3대 명물-바시리 구시, 쌍향수, 능견난사(놋쇠로 만든 바루-그릇)

도랑을 이용한 연등 18:00

도랑에 비친 연등 18;04

송광사 구경을 마치고 내장산 탐방을 위해 대가 저수지로 이동한다. 94km를 이동하여 내장산과 백암산을 원점회귀를 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한다. 20:00

대가 저수지 근처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고 야영을 한다 

오늘 탐방은 지난 한달과는 달리 아주 여유로운 탐방이 되어 쌍향수와 바사리 구시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