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명산40 탐방(2013)

명산40 탐방 38 : 선운산(수리봉)

상영신 2013. 9. 16. 22:01

명산40 탐방 38 : 선운산(수리봉)

 

일시 : 2013.9.14(토)  6:45~13:50

장소 : 선운산 수리봉 (336m)                                                              나의 도전 현황 38산 : 37,831m

누구랑 : 나홀로

산행경로 : 선운산 야영장 - 선운사 - 마이재 - 수리봉 - 견치산 - 소리재 - 용문굴 - 도솔암 - 

               낙조대 - 청룡산 - 국기봉 - 사자바위 - 투구바위 - 도솔제 - 선운사 - 야영장(7시간)

날씨: 아침 폭우 후 흐리고 비, 오후에 맑음

경비 : 이동거리( 280km :편도), 유류대 40,000원 , 고속도로 통행료 12,000원, 문화재 관람료 주차비 5,000원    합계 57,000원

 

여느때처럼 집에서 저녁을 먹고 선운산으로 향한다. 3시간 운행하여 야영장에 도착하니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야영하는 팀들이 보인다. 빈 자리에 텐트를 치고 자정무렵 잠에 든다. 비오는 소리와 옆 텐트의 지퍼 내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4시이다.  20여분을 뒤척이다 비소리가 요란스러워져 서둘러 텐트를 걷고 차량에서 잠을 청해 보지만 허사다

야영장을 벗어나 입구로 이동하여 아침을 해결하고 비가 오는 가운데 탐방에 나선다. 

선운사 매표소 와 일주문6:50-일찍부터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한다

선운사를 들리지 않고 마이재를 향하는 도중 오른쪽으로 석상암이 있다7:2

석상암은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된 기록이 전하며, 이후 1665년(현종 6)에 학철(學哲)스님이 중창하였다. 현재는 법당과 칠성각만이 남이 있으니, 주변 네 곳에 건물터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본래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고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석상암을 먼 말치로 보고 마이재로 향한다. 전주에서 오신 탐방객과 수리봉까지 동행을 한다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마이재에 도착7:20

수리봉에서 인증샷 7:40-

수리봉(336m, 지도 표기 329m)은 도솔봉으로 불리운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고한다

동행한 탐방객에게 카메라 사진을 부탁하였으나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많은비에 촬영거리가 멀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이 사진은 만약을 대비하여 스마트 폰으로 촬영한 것이 이나마 나와 다행이다. 이 사진으로 인증을 받기로 한다. 동행한 탐방객은 폭우로 하산을 하고 나는 먼 거리를 찾아온 탓에 종주 탐방을 하기로 한다. 

포개 바위 갈림길로 추정7:45

산길이 자그마한 물도랑으로 변한다 7:51

이 자그마한 물 도랑이 우리에게 하찮은 물흐름이지만  개미들에겐 큰 급류로 인식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보는 안목과 시야를 넓혀서 사물을 볼수 있다면 어려운 일들도 때로는 하찮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면서 비 속을 걷는다 

이정표에는 견치산 0.62km 8:14-

1분 남짓 지나니 우측으로 견치산 표지가 있는 돌무더미를 만나다. 이정표의 표기가 잘 못 된 것일까 지도 상의 견치산 표기가 달못된 것일까 

견치산 표기가 있는 돌무더기 8:16

견치산 이정표 8:23-

지도상의 견치산은 수리봉에서 소리재가는 길목에 있는데, 이정표에는 500m 벗어나서 견치산이 있다고 되어 있다

소리재 이정표 8:35

참당암은 선운사의 암자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지금은 산내암자로 사격(寺格)이 위축되었지만 본래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리었던 거찰(巨刹)이었다고 한다. 참당암은 이번 탐방에서 제외되었는데 다음번 기회에 들려보기로 한다

비가 걷히고 용문골과 천마봉, 건너편의 사자바위가 조망된다 8:45

천상보 직전 용문골 하산길 이정표9:00 -용문골로 향한다
내려다본 용문굴 9:3 - 대장금에서 장금이 엄마 무덤이 좔영된 곳
아래에서 올려다 본 용문굴9:6
도솔암 가는 길에본 꽃무릇(상사화)9:12- 잎과 꽃이 함께 피지 않는다고 붙여진 이름이 상사화라고 한다

도솔암의 극락보전 모습 9:19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선운사.도솔사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 곳에 신라왕이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여 창건사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兜率)’이라는 이름 등은 도솔암이 미륵신앙의 배경하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도솔암 뒷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 9:23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었던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관련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애불좌상이 조성된 이래 이불상의 배꼽에는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는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내원궁 오르는 길목의 나한전 9;24 - 우측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내원궁이 있다

내원궁 모습:28- 건너편에 천마봉이 위치하나 안개로 조망이되지 읺는다

천마봉 갈림길9:40- 철계단을 따라 오르면 천마봉을 오를 수 있다

천마봉 가는 길목에서 본 용문골 모습 9:45-오른쪽 바위에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천마봉의 위용9:48

안개때문에 천마봉은 구름에 갖혀 있다10:2

낙조대 갈림길 10:4

안개에 묻힌 낙조대 10:5

눈으로 보이는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좋으나 안개속에서 낙조의 모습을 그리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쩌면 상상속의 낙조의 모습이 더 황홀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병풍비위오르는 계단으로 추정된다10:9

철계단에서 돌아본 낙조대 모습 10:11

철계단을 지나 이정표에는 배맨 바위가 멀지 않앗음을 알려준다10:12

배맨 바위 10:30-옛날에 배을 맨적이 바위

멀리서 바라본 배맨바위와 오른쪽의 천마봉 모습10:38

쳥룡산(314m)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과 산행에서 처음 만난다 10:54

도솔계곡 상류11:01- 낮은 산들 임에도 심산유곡처럼 느껴진다

쥐바위에는 11:11

도솔암 하산 갈림길 11:16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국기종이란다 11:20-회어재 갈림길이다

사자암에서 바라본 도솔제와 안장 바위(도솔제 우측 산) 11:32

사자바위에서 용문골을 바라보면선 11:32

좌측부터 천마봉, 용문골, 마애불, 도솔암 모습11:52

투구바위에 도착 12:31

클라리머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투구 바위12:42

좌우측으로 거대한 바위에 많은 루터들이 있다12:44

이길을 따라 내려오면 도솔제 제방으로 향한다 13:02

선운사 하산길 옆의 꽃무릇 단지 11:12

 선운사 가는 길에는 꽃무릇이 피어 있다 13:16

꽃무릇 13:20

선운사 극락교 13:26

스마트폰으로 찍은 극락교 11:27

선운사 11:29

선운사 대웅보전 13:32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 탐방길에는 비가 오고 안개가 끼어 시야가 흐린데다가 카메라가 비에 젖어 사진이 흐리게 나온다. 7시간 가까이 산행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39번째 탐방을 위해 바래봉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