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둘레길 걷기

작약꽃 만발한 의성 조문국 사적지

상영신 2019. 5. 28. 00:15

일 시 : 2019. 5. 25

장소 : 의성 사촌마을, 조문국 박물관과 사적지, 산운생태공원

누구랑 : 이여사랑 둘이서


가깝고도 먼 이웃 의성으로 나들이한다.

나들이 장소는 사촌의 가로숲과 삼한시대 초기국가인 조문국 사적지와 산운생태공원이다.

사촌마을

사촌마을 가로숲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가로숲은 일명 서림(西林)이라고 한다. 사촌 마을 서편 들판을 가로질러 조성된 약 1,000m 길이의 방풍림인 사촌 가로숲은 김자첨이 14세기 말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 비보 사상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숲은 1999년 천연기념물 405호로 지정되었다.



가로숲

가로숲 동영상

사촌 마을 - 안동 김씨(安東 金氏) 중시조인 충렬공(忠烈公) 김방경 金方慶)의 5세손 감목관(監牧官) 김자첨(金子瞻)[1369~1454]이 조선 개국의 해에 해당하는 1392년 안동의 회곡(檜谷)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마을을 개척하여 사촌이라고 하였다. 사촌(沙村: 모래골)이라는 이름도 김자첨이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떠 ‘사촌(沙村)’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는 이야기와 모래땅이던 지역적 특징을 감안해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일찍이 지사(地士)들은 사촌 마을을 영남(嶺南) 8명기(名基) 중의 하나라 하여 세 정승이 나올 수 있는 명당자리라고 하였다. 신라 말 고운(孤雲)최치원(崔致遠)의 장인으로 정승을 지내고 안정백(安貞伯)에 봉해진 나천업(羅千業)이 살았다고 하며 1950년대까지도 마을 뒤 자하산 중턱에 나정승의 묘라고 전해지는 고총이 있었다. 고려 말에는 손씨(孫氏)가 살았다고 전해온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신라 중엽부터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역사는 천년이 훨씬 넘었으리라 생각된다. 조선조에는 서애(西厓)유성룡(柳成龍)이 이곳에서 태어남으로 세 명의 정승 중 두 명이 태어난 셈이 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정승 한 명이 더 배출될 것이라고 믿는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만취당


만년송

만취당 - 1582년에 지은 만취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으로 조선 전기 문신이었던 김사원(1539∼1602)이 선조 15년(1582)부터 3년간에 걸쳐 세운 건물이다. 만취당은 사랑채 격이지만 본채에서 떨어져 있어서 정자같은 느낌을 준다. 본채에는 사랑채가 따로 있는데, 규모가 매우 작다, 객을 맞을 별도의 만취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촌 김씨의 문화장소로 사용해 오며,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이라 전해진다. 만취당에는 만년송이라는 오래된 향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만년송'이라는 소나무 이름을 붙였지만 소나무가 아닌 향나무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을 하지만, 김사원의 증조부이자, 류성룡의 외조부인 김광수의 '송은'이라는 호가 이 만년송에서 나왔다는 고사를 미루어 볼때 이미 송은 김광수때에도 이 만년송은 노송의 모습이었을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만취당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대형 건물로 만취당의 현판 글씨는 명필로 잘 알려진 한석봉의 글씨이다.

의성 의병기념관



의성의병기념관-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공포하자 유림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의성향교도 1896년 3월 17일(음 2,4)향회를 열어 창의를 결의하고, 의성군 점촌면 서변리 사촌마을의 김상종(1848~1909)을 의병장으로 천거하였다. 김상종은 중군장 권대직, 선보장 김수달, 우익장 김희정, 소모장 김수욱, 관향장 김수협등으로 진용을 편성하고 3월 25일 의병장에 취임하였다.
의성의진은 창의한 지 8일 만에 치른 구성산(구봉산)전투에서 20여명의 적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고, 이후 벌어진 황산전투, 감은리 전투, 산운천변전투(비봉산 전투)에서도 승전과 패전을 거듭하며 분전하였다.
김상종 의병장의 의성의진이 활약했던 전기 의병 (1894~1896)은  이후 중기 의병(1904~1907), 후기의병(1907~1910)으로 이어져 항일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의성군은 창의부터 해산까지 62일 동안 결사적으로 항전한 의성의진의 의병투쟁을 널리 알리고 의롭게 싸우다 순국한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16년 11월 이곳 사촌마을에 의성의병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조문국 박물관과 사적지

금성면 초전리 조문국 박물관에는  17시를 넘겨 도착하여 민속유물전시관을 보고 박물관은 겨우 10분 정도 둘러 보니 18시 폐관시간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야외에 마련된 정원을 몇 군데를 돌아본다. 

조문국 박물관 전경 동영상

조문국 박물관

민속유물전시관


전통 놀이 전시관

민속유물전시관내부 동영상



도자기 정원

장미 정원

공룡 놀이터

미로 정원

지석묘 정원

횡혈식 석실분



▼ 조문국 사적지

조문국 - 경상북도 의성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라고 하는 삼한 시대 초기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고려 시대 의성부(義城府)였던 문소군(聞韶郡)은 원래 조문국이었다고 기록된 이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도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에는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라고 밝혀 놓고 있어 조문국의 중심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후 벌휴왕 때에 신라에 병합되어 조문군으로 편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작약꽃밭


대리리 2호분 전시관


1호 고분(경덕왕릉)

삼한 시재의 부족국가이던 조문국이 이곳에 도읍하여 신라 벌휴왕 2년(185년)에 신라 문화권에 병합되기 전까지 인근 고을의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조문국의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 봉아래에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금성산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는 금성면 일대는 쌍계천과 금성산 사이에 넓은 곡간 평야가 펼쳐져 있어 경작지와 용수 확보 등 선사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이는 이 일대의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초전리·학미리·수전리 지석묘군의 분포에서도 알 수 있다.

고분군의 분포는 군위군 우보면에서 의성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과 중앙선 철도로 구분되므로 국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대리리 고분군, 동쪽은 고분군의 능선을 중심으로 북쪽은 학미리 고분군, 남쪽은 탑리리 고분군(塔里里 古墳群)으로 불리다가 1998년 4월 13일 경상북도 지방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면서 의성 금성산 고분군으로 통합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작약꽃 만발한 조민국 사적지 동영상


해질녁 조민국 사적지 탐방을 마치고 19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금성산 입구에 있는 산운생태공원 도착하여 바삐 주위를 둘러 본다. 

산운생태공원

폐교된 산운초등학교를 활용한 산운생태공원은 산운마을의 유래와 민속유물을 전시한 마을자료관과 야외 생태학습 및 공룡체험을 할 수 있는 생태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6년 6월 7일 산운생태공원을 개관하였다.

산운마을에서는 문화재로 지정된 학록정사, 운곡당, 소우당, 점우당 등 전통고가옥 현장체험을 할 수 있다.





산운생태공원 주소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19